농촌학교, 문이 닫히고 있다.

30년간 소규모 학교 5, 509개 통폐합 이뤄져…농촌 황폐화 촉진
통폐합에 맞서 반대도 ‘팽팽’…작은 학교 살리기 확산

  • 입력 2013.02.28 20:02
  • 기자명 경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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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사회에 절망감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기고, 농사만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누구도 농사를 지으려하지 않고, 농사짓는 이들마저 농사를 포기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학생은 줄어들고, 정부는 ‘교육재정의 효율적 운영’이라는 경제 논리로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추진하고 있는 통폐합 정책은 여전히 거센 반발과 함께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교육과학기술부가 통폐합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밝혀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수십 년 째 이어지는 반발, 그 이유는 학교가 지역사회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학교 문이 닫히는 순간, 마을 공동체는 풀이 죽고, 아이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닫힌 공간이 되어 소멸의 길을 걷는다. 수십년째 팽팽하게 이어지는 통폐합과 작은 학교 살리기. 소규모학교 통폐합만이 능사인지, 농촌의 현실과 함께 정부의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 이에 따른 농촌의 변화를 살펴본다.

지난 1일자로 문을 닫게 된 충북 괴산 보광초등학교 화곡분교. 정부의 소규모 학교 통폐합 기조에 따란 지난 2005년부터 약 400여 곳의 농산어촌 학교가 폐교됐다. 〈사진=한승호 기자〉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농업·농촌·농민

국가가 주도하는 숨 가쁜 산업화로 7~80년대 농민은 도시를 떠나야 했고, 남은 농민이 지은 농산물은 도시 노동자의 저임금을 뒷받침하기 위해 값싸게 팔렸다. 90년대 들어서 WTO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신호탄으로 농업희생을 전제한 개방농정이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농가소득은 계속 떨어졌고 2011년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는 100대 59로 벌어졌다.

농촌인구는 계속 줄고 있고,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1970년 1,400만명이던 농촌인구는 2011년 296만명으로 급감해 농촌인구 비율은 44.7%에서 5.8%가 됐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1960년 4.2%에서 2010년 20.9%로 급증했다. 다문화 가정, 독거노인, 조손가정 증가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 취약 계층도 꾸준한 증가세다.

<자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30년간 꾸준히 이어져 온 소규모 학교 통폐합

이러한 농촌의 현실은 고스란히 학교에 반영됐다. 취학아동이 줄었고, 학교는 계속 작아졌다. 올해 강원도 21개 학교는 신입생을 한명도 받지 못했다. 정부가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을 추진한 1982년부터 30년간 강원, 충북, 전남, 경북, 경남의 경우 30% 이상의 학교가 폐지됐고, 현재 읍·면·도서지역은 3분의 2에 해당하는 학교가 사라졌다.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조손가정의 학생 비율은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농업희생을 기반으로 한 성장일변도의 경제정책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농산어촌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교육 재정운영 효율화와 복식수업 등 열악한 교육여건 개선 등을 목표로 학생 수가 일정규모에 달하지 않으면 인근 과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해 적정규모 학교로 재편하는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정책이 시작된 1982년부터 1998년까지 3,734개 학교가 통폐합됐고, 1999년에는 한해만에 971개교가 통폐합됐다. 1999년은 IMF 구제 금융 결과로 정부가 2,577억원의 막대한 재정과 통폐합 기준 100명을 제시하며 강력하게 추진한 탓이다.

2000년에는 통폐합 추진주체가 시도교육청으로 전환되고 ‘작고 아름다운 학교 가꾸기’ 사업이 추진되면서 통폐합은 미진했다. 그러다 2005년 4월 국정현안조정회의에서 학교 통·폐합 추진 결정에 따라 중앙정부 차원에서 통폐합을 재추진했다. 시도교육청에 60명 이하 학교를 통폐합 대상으로 권고하고 각 시도교육청에서 지역실정에 맞춰 자체기준을 둘 수 있게 했다. 본교 폐지·통합 운영 시 10억원, 분교장 폐지 시 3억원, 분교장으로 개편 시 2천만원을 지원했다.

지난해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최소 적정규모 학급수(초6·중6·고9) 및 학급당 학생수(최소 20명)에 달하지 못하면 통폐합을 하겠다는 취지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혀, 거센 반발을 일으키고 꼬리를 내렸다. 그럼에도 통폐합 지원금을 대폭 확대하는 등 통폐합을 강하게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렇게 30년 동안 꾸준히 통폐합을 유도한 결과 5,509개 학교가 사라지거나 합쳐졌다.

그치지 않는 반발, 황폐해지는 농촌

정부가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을 일관되게 30년 동안 실시한데 반해 통폐합 논란은 꺼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당초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 705개교를 통폐합 할 계획이었지만 실제 통폐합 학교는 384개교(55.9%)이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400개교가 목표였지만 107개교만 완료해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폐교가 가지고 오는 지역사회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지역주민·동문·지자체와 교육단체의 반발이 거세게 이어지는 까닭이다.

정부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이 2010년 12월에 발표한 <농산어촌 소규모학교 통폐합 효과 분석>에 따르면, 폐교 발생 지역에서 주민들의 지역 사회 활동 참여가 위축되었고, 아동 청소년층 인구와 청장년 층 인구 감소가 컸다.

폐교된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소규모 학교 통폐합의 농산어촌 지역이 황폐화되었다”는 주장에 65%가 그런 편이라고 답했다. “학부모나 동창들은 학교에 운동회가 있거나 무슨 행사가 있으면 다 모여서 선후배가 만나고 그랬는데…. 공동체가 깨진다는 것이 가장 문제인 거예요. 지역주민들이 융합하는 게, 화합하는 게 어려운 거예요. 그럴 계기가 없어져 버리니까” (충남 S면 주민), “회합이나 그런 게 많이 없어졌죠. 여기가 6개의 부락인데, 잔치 같은 게 없어졌죠. 운동회 같은 걸 하긴 하는데 학부모만 하지. 동네주민들이 참여하고 이런 건 없어졌어요.”(충남 Y면 주민)

뿐만 아니라 “소규모학교 통폐합이라는 목표 중 하나가 교육의 질을 높임으로써 정주여건을 개선한다는 데 있다고 하나, 폐교학교수가 1개 증가할수록 시군 지역의 초중고 학생수는 79~130명 줄었고, 학부모 인구수도 111명 감소했다”고 밝혔다.

전라남도 면 지역만을 대상으로 한 미시 분석 결과 역시, 누적 폐교수가 1개 증가할 경우 학력 인구수는 8~13명, 학부모 인구는 21명 감소했다.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이 농산어촌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보다는 오히려 인구를 유출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학교라며 재정지원을 하려 들지 않아 시설은 낙후되고, 복식수업 등 교육여건은 열악해진다. 이 탓에 여력이 되는 부모들은 농촌을 떠나고, 다문화 가정, 조손가정 등 여건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 열악한 교육환경에 처하게 된다.

또 폐교 시설은 농어촌학교 상당수가 1950~60년대 개교 당시 지역 유지나 주민들이 지역의 공익을 위해 부지를 기부해 개교한 경우가 많음에도, 대부분 폐교가 외지인이나 기업체, 종교단체 등에게 매각 또는 임대되거나 미활용 된 채 방치돼 폐교 지역 주민과 학생들의 상실감이 크다. 이렇게 학교가 없어진 지역은 인구유출과 함께 황폐화된다.

통폐합정책 경제효과 미비, 재고 필요

위 연구보고서는 통폐합에 따른 경제적 효과 역시 크지 않을 뿐더러 “통폐합으로 감수해야 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비경제적인 부분을 상쇄할 만큼의 효과도 아니”라고 발표했다.

최준렬 공주대학교 교수는 교육인적자원부(2007년 당시) 용역 연구에 “근본적으로 농산어촌이 진정한 삶의 터전이 되고, 그 삶의 터전 위에서 학교가 지역사회와 공존 공영하는 방식이 되지 않는다면 농산어촌의 학교 소규모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30년간의 소규모학교 통폐합, 그치지 않는 반발과 농촌사회의 황폐화. 통폐합 정책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경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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